가계·정부·은행의 합리적 행동 필요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의 급변동이 발생하게 될 경우 가계와 금융기관의 부실이 확대되어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의 상황만을 놓고 볼 때에는 지나친 우려와 비관적 전망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시스템 특히 금융시스템은 경제주체의 심리와 기대에 따라 언제든지 영항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타당한 면도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과 혹시 있을 수 있는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에 대해 정확히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가계대출 상황 위험한가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가계들이 금융권에서 차입한 규모는 약 529조원이며 이중에서 은행권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은행권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작년부터 증가율이 다소 확대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비관적 전망을 하는 견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가계대출 증가가 ‘위험하다’고 단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수치적인 근거를 통해 살펴보자.

첫째로 경제성장에 따라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제현상이므로 증가현상 자체로 위험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둘째, 최근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와 규모를 볼 때 10% 내외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신용버블기인 2001년~2002년 당시의 약 28%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또한 올해 은행권 대출 추이를 살펴보면 기업대출이 가계대출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자금이 기업으로는 가지 않고 가계대출에 집중되고 있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셋째,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을 살펴보면 관련 지표가 다소 악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 가처분소득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금년 6월말 현재 약 1.4배로서 미국, 일본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개인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금년 6월 말 현재 44.3% 수준으로 미국, 일본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산이 금융자산보다는 부동산 등 실물자산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넷째, 가계대출 연체율이나 은행 부실채권비율 모두 1% 미만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부실징후가 현재로서는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은행은 충당금이 충분히 적립되어 있어(금년 9월 말 현재, 고정이하 여신에 대한 충당금 적립비율이 160%를 상회) 설령 가계대출이 부실해지더라도 그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상당부분 갖추고 있다.


각 경제주체들이 현재의 가계대출 증가 상황을 차분히 살펴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수치적인 근거를 따져볼 때, 가계의 채무상환능력과 금융기관의 손실대응능력은 현재로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며 가계대출 증가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분석은 현 시점을 기준으로 살펴 본 정태적인 분석이라는 한계가 있다. 만일 가계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태에서 소득증가 둔화·주택가격 급락·금리급등 등의 부정적 요인이 잇따라 발생하게 되면 가계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기 마련이다.

우선, 지금처럼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 하에서 부동산 시장에서의 불안심리가 지속된다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수요 또한 계속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심리에 따라 대출을 받아서라도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나타나게 마련이고 이는 주택가격을 다시 상승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미시적으로는 주택가격이 오르면 같은 집을 사더라도 주택구입에 소요되는 자금과 대출규모도 증가해서 개인별 금융비용 부담이 많아지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한편, 자금운용을 하는 은행권의 입장에서는, 기업들의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증가, 대기업 여신수요 감소 등의 영향으로 인해 비교적 안전한 자산운용처라고 판단하는 주택담보대출에 적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가계대출중 변동금리부 대출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금리가 급등하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한계계층의 부실증가와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셋째, 가계대출이 증가하더라도 가계의 소득이 뒷받침되면 가계부실이 생길 염려가 없다고 하겠는데 최근 가계소득 증가율보다는 가계대출 증가율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장기적으로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외부충격에도 취약해 질 수 있다.

넷째, 급등하던 주택가격이 향후 폭락하게 되어 버블붕괴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우리경제의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경험처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가계부실이 증가하고 이는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져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떨어져서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계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앞으로 우리 경제주체 모두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기본적으로 가계대출시장은 자금의 공급자인 금융기관과 그 수요자인 가계간에 시장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를 띠고 있는 것이지만, ‘시장의 실패’로 인하여 금융의 건전성을 저해할 우려가 큰 경우에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최근의 부동산시장의 불안정과 관련한 가계대출의 움직임이 그러한 예라 하겠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는 가계대출 증가속도와 가계부실 가능성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가계발(發) 금융기관 부실 또는 금융위기 발생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는데 역량을 집중해 오고 있다.

투기지역의 고가아파트를 중심으로 담보가치의 40%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도록 하고 원리금을 감당할 수 있는 소득능력의 범위 내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하는 것 등이 그 주된 내용이다. 정부는 8.31 부동산정책 및 지난달 15일 발표한 주택담보대출 리스크관리 강화대책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함으로써 정책신뢰를 회복하고 부동산가격이 안정되도록 만전을 기해 나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이 아닌 자본시장, 기업투자 등 보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입되도록 증시 수요기반 확충, 기업 투자환경 개선 등을 위한 정책적 노력도 병행 추진할 것이다.

금융기관들도 외형위주의 경쟁에만 치중하여 자산불리기에만 급급하는 것은 잠재적 부실대출 규모도 키우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대출심사 때 단순히 ‘담보가치 위주’에서 벗어나 대출수요자의 소득흐름, 연령 등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각종 변수에 대해 면밀히 심사하여 대출금액과 금리조건 등을 조정하는 보다 선진화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변동금리상품에 집중하여 금리리스크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안전성만 추구하는 것은 거래고객의 신용위험을 증가시켜 결국 대출자산의 부실화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고정금리상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대출 취급시 금리리스크를 고객들에게 상세히 설명해주는 등 자신의 고객들이 과도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자산운용면에서 대출위주의 후진적인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수익원의 다변화를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길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끝으로 경제주체의 일원으로서 각자 리스크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가계 구성원의 합리적 행동도 매우 중요하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미래의 본인부담과 상환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차입을 하는 행태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막연한 기대감으로 무리하게 은행빚을 내어 부동산투기에 뛰어드는 것은 부동산가격의 거품이 꺼질 경우 바로 자신을 신용불량자의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본인의 신용’은 본인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2003년도 신용카드대란과 같은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각 경제주체들이 현재의 상황을 차분히 살펴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금융감독당국도 가계 대출 증가 상황과 건전성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향후 발생될 수 있는 여러 시장 불안요인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