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수요 억제와 공급확대가 함께 가야 하는 이유
“보유세는 주택보유의 기회비용이며, 기회비용이 기회이익보다 클 때 수요는 비로소 억제된다. 판교에서 경험했듯이 보유세 강화 없는 공급확대는 오히려 ‘인화(引火)’성 재료가 될 뿐이다.” (2005년 8월26일자 한국일보 ‘기자의 눈’)

시계바늘을 1년여 전인 2005년 여름으로 돌려 보자. 당시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투기 열풍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이었고 선량한 대다수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집 2채 가진 사람이 은행 돈을 빌려 3채, 4채를 마음 놓고 가질 수 있었고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의 분양권을 웃돈을 붙여 마음 놓고 사고 팔수 있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신도시를 대거 개발해 아파트 분양을 하고 인천 검단 신도시와 파주 운정신도시 추가 계획을 발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의 낮은 보유세 부담이나 다가구 소유자에 대한 세제 허점을 감안하면 판교 아파트의 3분의1 이상은 투기꾼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고, 인천 검단과 파주에는 떳다방이 즐비하고 분양권을 사고파느라 아수라장이 됐을 터이다. 투기수요가 득실대는 판에 아파트 공급은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는 꼴(인화성 재료)이었다.


부동산 제도 개혁 통해 신규 공급 주택이 실수요자 손으로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물론 일부 투기꾼의 편법과 탈법은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아파트 모델하우스마다 떳다방들이 지천으로 깔리고 분양권 전매가 판을 치며, 집을 2,3채 가진 큰손들이 온갖 차명으로 신도시 집을 소유하던 일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대신 임대아파트가 부쩍 늘어났고 고분양가 논란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판교 아파트는 대부분 실수요자나 부동산 보유량에 맞는 합당한 세금을 낼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 분양됐다. 지난 몇 년간의 노력과 최근의 입법과정 등을 통해 △투기억제와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세제 합리화 △거래 투명화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공급제도 확립 등 부동산 제도 전반이 개혁됐다는 점은 큰 진전이다.


부동산 제도 전반이 개혁되면서 아파트 모델하우스마다 속칭 '떳다방' 업주들의 천막이 즐비하던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꼼꼼한 점검과 분양가 합리화 등 추가 대책들이 있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새로 건설될 신도시에 들어설 아파트들이 집 없는 우리 이웃의 실수요자 손에 들어가게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부동산 투기수요 억제와 주택 공급 확대라는 두가지 트랙을 병행 추진하는 이른바 8·31 정책의 골격은 합리적이며 그 원칙과 기조는 흔들림 없다. 주택을 몇 채씩 가지려는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내게 해 소유에 합당한 사회적 부담을 지게 하고, 실수요자들에게는 양질의 주택을 균형있게 공급해 주거안정성을 높이고, 저소득층에게는 임대주택을 싸게 공급한다는 부동산 정책과 주거복지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8·31정책 발표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공급확대로 U턴’론은 부동산 정책 훼손 시도

부동산 정책의 본질과 일관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부동산 세제 합리화를 ‘세금 폭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했던 것이 그렇고, ‘6억 죄인 취급’식의 ‘부자 피해론’이 그랬다.



최근 인천 검단신도시와 파주 운정지구 확대 발표 이후 ‘공급확대로 U턴’(동아일보) 이나 ‘부동산 정책 실패 시인한 셈’(조선일보) 이라는 등 정부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을 흠집내는 듯한 보도가 잇따르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부동산을 포함한 하나의 상품시장이 여러 가지 변수와 돌발 상황에 의해 예측방향과는 다소 다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시장을 다루는 정부의 정책이 어느 순간 즉흥적으로 불쑥 나오거나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도시 발표는 8·31정책의 4가지 기본방향(서민주거안정, 부동산 거래 투명화, 투기수요 억제, 주택 및 토지공급 확대)중 하나인 주택공급 확대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준비해온 것이며 투기수요 억제와 공급확대라는 수급 양측면의 균형된 종합대책인 8·31정책을 계획대로 진행해 가는 것일 뿐이다.


투기수요 억제-공급확대 이분법적 사고 문제

그런데도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의심하는 듯한 오해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두 가지 트랙으로 진행되는 투기수요 억제와 공급확대 정책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8·31 정책발표 이후 종부세 강화,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등 투기 수요 억제 정책에 대한 국회 입법과 실제 적용에서 불필요한 논란과 소모적 논쟁을 거치면서 투기수요 억제를 일방적 '규제'로 매도하고 공급확대와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더욱 굳어졌다.

게다가 언론들은 정부의 강남 투기수요 억제와 지역간 불균형을 막기 위한 부분적인 강남 재건축 억제를 전체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공급억제인양 왜곡 과장했다.

이제 와서는 신도시 건설계획 발표를 ‘부동산정책 U턴’으로 포장하는 언론들은 8·31 때 이미 연간 30만 가구의 주택공급 계획이 명시돼 있었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8·31정책의 공급대책을 상세히 소개한 조선일보 화면
이들 신문들은 지난해 8·31정책 입안 당시에는 공급분야 부동산 대책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수도권 택지 4500만평 2010년까지 공급키로’라는 형태로 정부의 다양한 공급확대 정책을 소개했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은 예정대로 택지공급이 이뤄지면 수도권 주택 공급 물량은 ‘과잉공급’이라고 할 정도로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택지라면 80만~90만 가구의 주택 공급이 가능하고, 93.9%(2004년 기준)인 수도권 주택보급률도 100%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서울 강북재개발과 공공택지 공급 확대, 중대형 공급확대 등 당시 정부가 추진한 주요 주택공급확대정책도 자세하게 소개했다.


'조급증 수요' 부추기는 잘못된 메시지 경계해야

정부가 당시 마련한 ‘수도권 주택·택지 수급 전망 및 공급확대 방안’에는 5년간 4500만평의 택지가 필요하며 이미 확보된 택지와 개발 예정인 택지를 개발해 5년간 120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다. 또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택지 공급 부족이 우려될 경우 추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이들 공급확대 방안들은 투기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투기수요 억제 정책과 각종 제도들이 시장에 정착한 이후라야 비로소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다. 투기수요를 막는 것과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서로 맞물려야만 새 아파트가 투기꾼이 아닌 실수요자의 품에 돌아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속도차이만 있을 뿐, 둘 중 하나만 추진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돌아가는 수레바퀴의 두 축인 셈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는 걸러지지 않은 소문과 오도된 메시지들이 넘쳐난다. 부동산으로 먹고 사는 세력들이 ‘조급증 수요’와 ‘묻지마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자칫 여기에 휩쓸려 집값 거품의 상투를 잡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시장에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보다 냉철해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있다.